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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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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동주는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선수 시절 내야수, 지명타자로 활약했다. 서울중대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하여 배명고등학교, 고려대학교를 거쳤으며, 1997년 OB 베어스에 입단하여 두산 베어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97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MVP를 수상했으며, 2003년 타격왕, 2007년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15년 은퇴했으며, 국가대표로도 활동하며 여러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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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야구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김동주, 2008 베이징 올림픽
김동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타격 모습
본명김동주
영어 표기Kim, Dong-Joo
국적대한민국
출생지서울특별시
생년월일1976년 2월 3일 ()
신장180cm
체중98kg
포지션3루수
투구/타석우투/우타
프로 입단 정보
프로 입단1998년
드래프트 순위1차 지명
소속팀OB 베어스 (1998년)
두산 베어스 (1999년 ~ 2014년)
첫 출장1998년 4월 11일, 광주해태
마지막 경기2013년 5월 17일, 대전 대 한화
선수 기록 (KBO)
데뷔 리그KBO
데뷔 연도1998년
데뷔 날짜4월 11일
데뷔 팀OB 베어스
최종 리그KBO
최종 연도2013년
최종 팀두산 베어스
타율0.309
홈런273
타점1097
수상 경력
한국시리즈우승 (2001년)
KBO 골든글러브4회 (2000년, 2003년, 2007년, 2008년)
주요 수상2003년 KBO 타격왕
2007년 KBO 출루율왕
국가대표 경력
대표팀대한민국
올림픽2000년 시드니
2008년 베이징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6년
아시안 게임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1997년 타이베이
2003년 삿포로
메달 기록
올림픽2000년 시드니: 동메달, 야구
2008년 베이징: 금메달,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6년 샌디에이고: 동메달, 야구
아시안 게임1998년 방콕: 금메달, 야구
2002년 부산: 금메달, 야구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1997년 타이베이: 금메달, 야구
2003년 삿포로: 동메달, 야구

2. 선수 시절

배명고등학교고려대학교를 거치며 아마추어 야구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을 갖춘 대형 3루수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고교 시절에는 투수타자 양면에서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으며, 대학 시절에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중심 타자로 활약하며 국제 대회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98년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KBO 리그를 대표하는 우타 거포이자 강타자로 명성을 떨쳤다. 선수 시절 동안 여러 차례 KBO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고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 뛰어난 개인 성적을 기록했다. 또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아시안 게임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며 국위 선양에도 힘썼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부상과 구단과의 이견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며, 2015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 1. 아마추어 시절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사했다. 서울중대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으며, 이후 배명중학교를 거쳐 배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배명고등학교 시절 주 포지션은 유격수였지만 투수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리드오프 타자이기도 했으며, 최고의 고교 강속구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유격수, 투수 외에도 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1992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투수 부문(자책점 0.80)과 타자 부문(타율 0.600, 10타점)에서 주요 개인 타이틀을 휩쓸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파워와 정확성을 겸비한 대형 3루수 유망주로 명성을 떨쳤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3년 OB 베어스의 1차 지명을 받았지만, KBO 드래프트 대신 대학 진학을 선택하여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려대학교 1학년 때인 1994년에는 타격에 집중하기 위해 투수를 그만두었다. 그해 타율 0.308, 2홈런, 11타점을 기록했으나, 부상으로 시즌의 절반 가량을 결장했다. 1995년 2학년 때는 타율 0.373, 4홈런, 14타점을 기록하며 전국 선수권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같은 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선발되어 유니버시아드와 야구 인터컨티넨탈컵에 우익수유격수로 참가했다.

1996년 3학년 때는 타율 0.402, 11홈런, 22타점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도 4홈런, 타율 0.625를 기록하며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당시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1996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발탁될 것이 유력했으나, 고려대학교의 라이벌인 연세대학교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최종 명단에서 제외되는 아쉬움을 겪었다. 김동주가 빠진 대표팀은 공격력에 공백을 드러내며 1승 6패로 8개 팀 중 최하위에 그쳐 역대 최악의 국제 대회 성적을 기록했다.

1997년 고려대학교 4학년 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했다. 풀 리그 방식의 이 대회에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우에하라 고지를 상대로 2개의 홈런을 쳤고,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도 다시 우에하라를 상대로 2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대한민국의 9–8 승리와 우승을 이끌었다. 이 대회에서 김동주는 26타수 동안 타율 0.538, 9홈런, 19타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며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로 최우수 선수(MVP)에 선정되었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1997년 KBO 드래프트에서 다시 한번 OB 베어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 2.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 시절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후 1998년 OB 베어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김인식의 지지 아래 신인 시즌 초반에는 주로 외야수로 뛰었으나, 후반기부터 본격적으로 3루수를 맡았다. 1998년 4월 11일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데뷔하여 첫 안타를 기록했으며, 신인 시즌 125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5, 24홈런, 89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했다. 같은 해 11월, 1998년 아시안 게임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 박찬호, 서재응, 김병현 등과 함께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1999년에는 타격에 집중하기 위해 3루수로 완전히 전향하여 타율 0.321, 22홈런, 84타점을 기록했고, 11월 1999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참가해 금메달 획득과 2000년 하계 올림픽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2000년에는 타율 0.339(리그 2위), 31홈런, 159안타, 103타점으로 개인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3루수 부문 첫 KBO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특히 2000년 5월 4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에밀리아노 기론을 상대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개장 이래 최초의 장외 홈런을 기록했으며, 현재 종합운동장역 5번 출구 옆에는 이를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9월에는 2000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당시 김동주, 타이론 우즈, 심정수로 이루어진 두산의 클린업 트리오는 상대 팀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2001년에는 비록 20홈런을 넘기지 못했지만, 2001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결정적인 만루 홈런을 쳐내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2002년에는 타율 0.318, 26홈런을 기록했고,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두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3년에는 타율 0.342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며 생애 첫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했고, 23홈런, 89타점을 기록했다.

2004년에는 타율 0.286으로 6시즌 연속 3할 타율 달성에 실패했고, 시즌 종료 후 은퇴 소동을 벌였으나 곧 철회했다.[1] 2005년에는 부상으로 시즌 후반 결장했음에도 타율 0.301, 10홈런을 기록하며 부활했다. 그러나 2006년 개막 전 열린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중화 타이베이전에서 1루 슬라이딩 중 어깨 탈구 부상을 당해[2] 시즌 대부분을 결장, 43경기 출전에 그쳤다.

2007년에는 119경기에 출장해 타율 0.322(리그 5위), 19홈런, 78타점, 11도루(개인 최고)를 기록하며 반등했고, 두 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일본 진출을 시도했다. 두산은 잔류시키기 위해 당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액인 4년 62억를 제시했지만, 김동주는 이를 거절하고 일본 진출 최저 조건으로 2년 4억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금액에 관심을 보이는 NPB 구단은 나타나지 않았고, 두산 역시 김선우 영입으로 방향을 틀면서 계약 제시를 철회했다. 결국 2008년 1월,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직접 입단을 타진했으나 거절당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두산과 연봉 7억, 옵션 2억의 1년 계약을 맺었다.[3]

2008년에는 타율 0.309, 18홈런, 104타점(리그 2위)을 기록하며 세 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고,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시즌 종료 후 다시 일본 진출을 시도했지만 두산의 불허로 무산되었다. 2009년에는 타율 0.353(개인 최고), OPS 1.049(리그 1위)를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7월 5일 LG 트윈스전에서 릭 바워를 상대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통산 100호 홈런을 달성했다.[6] 시즌 후 주장을 손시헌에게 넘겼다.

2011년 시즌 후 두 번째 FA 자격을 얻어 다시 일본 진출을 모색했으나 제안을 받지 못했고, 2012년 두산과 3년 총액 32억에 재계약했다. 이는 2012년 FA 선수 중 가장 늦은 계약이었다. 2012년 시즌 후반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고, 6년 만에 100경기 미만 출전을 기록했다. 2013년에는 시즌 초반 좋은 타격감을 보였으나 5월 17일 한화전 이후 1군에서 제외되었고, 허경민에게 주전 3루수 자리를 내주며 사실상 무기한 2군행 통보를 받았다.

2014년에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인 11월 20일 보류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7][4] 이후 현역 연장 의지를 보이며 신생팀 kt 위즈와 이적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되었고, 다른 팀을 찾지 못해 2015년 1월 31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8][5]

3. 국가대표 경력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의 모습


김동주는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인 1997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이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며 대한민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프로 입단 후에도 꾸준히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과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1998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또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동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도 참가하였다.

2006년 제1회 WBC에서는 대표팀으로 선발되었으나, 대회 초반 대만과의 경기 도중 어깨 부상을 입어 정성훈으로 교체되었다.[13][14]

3. 1. 주요 국제 대회 성적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여러 국제 대회에서 활약했다. 특히 1997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MVP를 수상하며 대한민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프로 입단 후에도 아시안 게임 금메달 2회(1998, 2002), 올림픽 동메달(2000) 및 금메달(2008) 획득에 기여하며 국제 무대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대회 초반 부상으로 아쉽게 교체되기도 했다.[13][14]

연도개최지대회팀 성적개인 기록
1995일본 후쿠오카유니버시아드은메달.333 타율 (6타수 2안타)
1995쿠바인터컨티넨탈컵4위
1997타이완 타이베이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금메달.538 타율 (26타수 14안타), 9홈런, 19타점, MVP
1998태국 방콕아시안 게임금메달.400 타율 (20타수 8안타), 2홈런, 6타점, 6득점
1999대한민국 서울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금메달.273 타율 (11타수 3안타), 2타점
2000호주 시드니올림픽동메달.292 타율 (24타수 7안타), 5타점, 2득점
2002대한민국 부산아시안 게임금메달.313 타율 (16타수 5안타), 1홈런, 3타점, 3득점
2003일본 삿포로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동메달.091 타율 (11타수 1안타)
2006미국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동메달.333 타율 (3타수 1안타)[13][14]
2007타이완 타이중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은메달.167 타율 (6타수 1안타), 1득점, 2볼넷
2008타이완 타이중최종 올림픽 예선2위 (본선 진출).400 타율 (5타수 2안타), 1타점, 3득점
2008중국 베이징올림픽금메달.294 타율 (17타수 5안타), 4득점, 4볼넷


4. 에피소드


  • 2015년 은퇴하기 전인 2004년에도 성적 부진 등을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한 적이 있다.[9][1] 당시 은퇴 선언과 번복 과정에서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처 천아무개씨와 이혼 후 겪은 갈등이 은퇴 선언의 가장 큰 이유"라고 주장했다.[10]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5살 연상의 부인과 결혼해 처가의 도움으로 선수 생활의 기틀을 마련했으나[11], 이후 어린 아들과 임신 중인 아이를 두고 이혼했다. 이혼 과정에서 양육비, 위자료 등의 문제로 갈등이 있었으며, 전처 천씨는 김동주의 외도를 주장했다.[12] 김동주 또한 인터뷰에서 "굳이 숨기고 싶진 않다. 하지만 결혼 생활하면서 줄곧 결혼 자체를 후회했다."라며 외도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혼 합의 중 연봉의 50%를 양육비로 지원하기로 했으나, 이를 피하기 위해 은퇴 소동을 일으켰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불륜과 무책임함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실제로 양육권을 주장하며 전처를 압박했고, 전처가 양육권을 선택하고 양육비 청구를 포기하자 아이들을 만나지 않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 프로 데뷔 첫해부터 3루수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두산 베어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했고, 이후 국가대표급 우타 거포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타이론 우즈, 심정수와 함께 이룬 클린업 트리오는 KBO 리그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 2005년에는 부상으로 후반기에 결장했지만 타율 0.302, 10홈런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 2007년에는 119경기에 출장해, 타율은 리그 5위의 성적을 남겼다.

  • 2007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일본 프로야구(NPB) 진출을 시도했다. 두산 베어스는 잔류를 위해 당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액인 4년 62억을 제시했으나, 김동주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일본 진출의 최저 조건으로 2년 4억이라는 높은 금액을 요구하면서 영입을 타진하는 NPB 구단이 나타나지 않았고, KBO에 신분 조회를 요청한 구단도 없었다. 두산 역시 김선우 영입으로 방향을 틀면서 기존의 계약 제시를 철회했다. 2008년 1월 6일, 김동주는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다음 날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구단 사무실을 찾아가 입단을 타진했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일본 진출을 포기하고 두산과 연봉 7억, 옵션 2억의 1년 계약을 맺었다.[3] 2008년 시즌 후와 2011년 시즌 후(두 번째 FA)에도 일본 진출을 시도했지만, 각각 두산의 불허와 영입 제안 부재로 무산되었다. 두산과 2012년부터 3년 계약을 맺고 잔류했다.

  • 2012년에는 다리 부상으로 시즌 후반 경기에 출장하지 못해, 6년 만에 출장 경기 수가 100경기를 밑돌았다.

  • 2013년에는 허경민에게 주전 3루수 자리를 내주며 출장 기회가 더욱 감소했다.

  • 2014년에는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1군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 두산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4] 이후 현역 생활 지속을 희망했지만, 계약을 제의하는 구단이 나타나지 않아 2015년 1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5]

  • 잠실 야구장(중견 125m, 양측 100m)에서 장외 홈런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이다. 프로 입단 초기에는 장타력을 주 무기로 삼았으나, 2004년 이후 잦은 부상으로 시즌 20홈런을 넘기지 못하면서 중장거리형 타자로 스타일이 변모했다.

  • 묵직한 체격으로 인해 무릎 부상을 안고 있었으며, 수비 범위가 좁고 실책이 잦은 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5. 별명


  • 5월에 뛰어난 성적을 보여 오월동주라고 불린다.
  • 오랫동안 두산 베어스의 주장을 맡아 두목곰이라고 불린다.
  • 이름이 술 이름과 비슷하여 동동주라고 불린다.
  • 과거 간통 사건으로 인해 간통주라는 별명도 있다.

6. 출신 학교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사하여 서울중대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배명중학교를 거쳐 배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배명고등학교 시절 주 포지션은 유격수였고 리드오프 타자를 맡았지만, 강속구 투수로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1992년에는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투수 부문(평균자책점 0.80)과 타자 부문(타율 0.600, 10타점)에서 주요 개인 타이틀을 휩쓸었다.

1994년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 드래프트 대신 대학 진학을 선택하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서 대학 야구 경력을 시작했다. 대학 1학년 때부터는 타격에 집중하기 위해 투수를 그만두었다. 대학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특히 4학년 때인 1997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우에하라 고지를 상대로 홈런 2개를 치는 등 맹활약하며 대한민국의 우승을 이끌고 대회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

7. 배우자


  • 김지은 (2007년~)

8. 통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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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소속나이출장타석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도루도루 실패볼넷삼진타율출루율장타율OPS루타병살타사구희생타희생플고의4구
1998OB23125510457691212112489432987.265.310.473.7832161480162
1999두산24114455399621282532284214153.321.394.564.958225910141
2000251275394697815929131106525165.339.414.6031.0172831713061
200126103421364491181801862224757.324.401.522.923190104065
200227120487415631322102679115261.318.405.557.961231813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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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9124517430721231911976466967.286.402.467.8702011416023
2005309433826851811311050125738.302.444.470.9141261012019
20063143164140193570416002317.250.360.386.7465471002
2007321194813826812324019781128355.322 .457 .534.99120410140211
2008331094513635511212218104226354.309.415.501.91618211120135
200934105426354631252801986316155.353.455.5931.0492101780310
201035110470387601142202067016745.295.407.506.9141961510154
201136120483406571162411775616654.286.393.475.869193188035
20123766245223186550227311624.291.339.341.6807672040
2013382810182621201910109.256.356.317.6742645040
2014391군 출전 없음
KBO 통산 : 17년16256592554085117102931227310974827814794 .309 .405 .514 .919 284618614728968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붉은 글씨는 역대 최고 기록

9. 주요 기록



'''통산 타점 기록'''

기록날짜소속팀상대팀장소경기 내용기타
개인 통산 첫 타점1998년 4월 11일OB해태 타이거즈광주프로 데뷔전
개인 통산 700타점2007년 7월 14일두산 베어스SK 와이번스문학5회 중월 2점 홈런 (상대 투수 레이번)역대 19번째
개인 통산 800타점2008년 7월 27일두산 베어스삼성 라이온즈잠실1회 2타점 중전 적시타 (상대 투수 윤성환)역대 14번째
개인 통산 900타점2009년 8월 13일두산 베어스한화 이글스잠실1회 좌월 3점 홈런 (상대 투수 김혁민)역대 10번째
개인 통산 1000타점2011년 4월 21일두산 베어스넥센 히어로즈잠실5회 3타점 우중간 적시타 (상대 투수 이정훈)역대 6번째



'''수상'''


  • 수위 타자: 1회 (2003년)
  • 골든 글러브 (3루수): 3회 (2000년, 2007년, 2008년)

참조

[1] 뉴스 두산 "김동주 트레이드 안 한다니까" http://news.naver.co[...] OSEN
[2] 문서 鄭成勲と途中交代。
[3] 뉴스 (프로야구) 김동주, 잠실 구장 100호 홈런 작렬 http://www.ijejutoda[...] 제주 투데이 2009-07-05
[4] 뉴스 김동주, 두산 떠난다… 보류선수 제외 결정 http://sports.news.n[...] 마이데일리DB
[5] 뉴스 김동주, 끝내 은퇴...17년 정든 유니폼 벗는다 http://sports.news.n[...] MK스포츠
[6] 뉴스 (프로야구) 김동주, 잠실 구장 100호 홈런 작렬 http://www.ijejutoda[...] 제주 투데이 2009-07-05
[7] 뉴스 김동주, 두산 떠난다… 보류선수 제외 결정 http://sports.news.n[...] 마이데일리DB
[8] 뉴스 김동주, 끝내 은퇴...17년 정든 유니폼 벗는다 http://sports.news.n[...] MK스포츠
[9] 뉴스 두산 "김동주 트레이드 안 한다니까" https://news.naver.c[...] OSEN
[10] 뉴스 "단독 인터뷰 - 은퇴선언 후 잠적 두산 거포 김동주" http://www.ilyo.co.k[...] 일요신문 2004-11
[11] 간행물 "다섯살 연상의 부인과 '솜사탕' 가정 꾸리고 사는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선수 김동주" 여성동아 2001
[12] 뉴스 "전처 천씨 심경고백" http://www.ilyo.co.k[...] 일요신문 2004-11
[13] 뉴스 "두산 김동주, 시즌 중 선수 노조 추진, 시끄럽지 않을 것" http://www.mydaily.c[...] 마이 데일리 2009-04
[14] 뉴스 김동주-이범호, WBC가 갈라 놓은 운명 http://www.osen.co.k[...] OSEN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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